제2장
6년 후, 진성시 서도역.
안유진이 세 아들을 데리고 서도역을 나서자마자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엄마는 간편하고 편안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지만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 찡그리는 표정 하나, 웃음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말랑하고 귀여웠으며, 마스크 밖으로 드러난 커다란 눈은 물기를 머금은 듯 동그랗고 촉촉했다. 긴 속눈썹이 깜빡일 때마다 보는 사람의 심장을 그대로 녹여 버렸다.
또 애 낳으라고 꼬시는 영상이네!
안유진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도역 출구에 서서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다.
그 옛날, 박이안은 ‘부정한 아내’라는 한마디로 그녀를 여론의 도마 위에 올렸다.
한 달 뒤 임신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박이안의 주장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뜬소문과 비난은 그녀를 거의 익사시킬 뻔했다.
양부모는 그녀가 망신이라며 혐오했고,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자 곧바로 관계를 끊고 집에서 내쫓았다.
그녀는 아이가 그 낯선 남자의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유산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한참을 생각해도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아이 또한 자신의 핏줄이었다!
아이가 자신을 엄마로 찾아온 것은 인연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낳아서 키워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평판이 아이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진성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가 생활했다.
임산부가 혼자 사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부터가 첫 번째 난관이었다. 많은 사장들이 그녀가 임산부인 것을 보고는 고용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돈이 필요했으니까.
밥도 먹어야 하고, 병원에 가서 아이도 낳아야 하고, 아이 분윳값이며 학비까지 마련해야 했다….
나중에 겨우 한 식당에서 일자리를 구한 그녀는 해고될까 두려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영양실조와 과로에 시달렸다.
결국 임신 9개월 차에 체력이 다해 퇴근길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다시 깨어났을 때 그녀와 아이들은 깊은 산속에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누가 그녀의 제왕절개 수술을 해 주었을까?
누가 그녀와 아이들을 깊은 산속으로 데려다 놓았을까?
또 왜 그들을 산속으로 데려다 놓았을까?
그들을 구해준 사람들은 우연히 모자를 발견했고, 불쌍해 보여 자신들의 거처로 데려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5년을 머물렀다!
그 5년 동안 그들은 걱정 없이 아주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루하루 자라면서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의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속은 좋았지만, 생명의 은인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이 없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아이들만 남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힘들게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이렇게 흐지부지 평생을 보낼 수는 없었다. 세상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아이들도 마땅히 보아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생명의 은인에게 작별을 고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왔다.
원래는 진성시에 오고 싶지 않았다. 6년 전의 일은 아직 잊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가 자신이 아직 기혼 상태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머리가 하얘졌다.
분명히 이혼 합의서에 서명했었는데!
전후 사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문제는 바로 닥쳐왔다. 그녀가 기혼 상태이기 때문에 아이들 출생신고를 하려면 아버지란에 자동으로 박이안의 이름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었다.
박씨 집안은 대단한 가문이고, 박이안은 그녀를 좋아하지도 않으니, 절대 남의 아이 아빠가 되어 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 출생신고를 하기 전에 먼저 이혼부터 해야 했다.
이번에 진성시에 온 것은 바로 박이안과 이혼하기 위해서였다.
박이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원망도 없었다.
그때는 그녀가 먼저 그에게 잘못했다. 그가 그녀에게 부정한 아내라고 한 것은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원망을 하자면, 그날 밤 그녀의 순결을 앗아간 그 망할 놈을 원망할 뿐이었다!
남자의 입은 거짓말을 내뱉는 귀신이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때 그 망할 놈은 입만 열면 그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존귀한 여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었다. 결과는?
하!
그놈 때문에 인생이 망했다!
그 억울함을 생각하면… 그놈을 죽이고 싶었다!
“엄마, 쉬 마려워요.” 막내 미래가 갑자기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부끄럽게 말했다.
안유진은 생각에서 벗어나 눈앞의 세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이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그날의 일은 분명 그녀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대신 이 아이들을 얻었으니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이 세 아이는 정말 그녀의 자랑이었다!
평화는 어린 신사였다. 평소 말이 많지는 않지만 맏형다운 풍모가 있었고, 감성 지수와 지능 지수가 모두 높아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집안의 가장 같았다.
꿈나와 미래는 정반대였다. 활발하고 장난기가 넘쳤다. 취미는 싸움! 특기도 싸움! 꿈도 싸움! 최고의 꿈은 가장 강한 싸움을 해서 천하무적이 되는 것이었다!
미래는 울보였다. 선천적으로 겁이 많고 지능은 평화나 꿈나보다 높지 않았지만, 다정한 아이였다. 마음이 아주 세심해서 어린 나이에도 요리를 할 줄 알았고, 심지어 아주 맛있게 잘했다.
게다가 타고난 패션 감각까지 있어서, 그녀가 지금 쓰는 향수도 모두 막내 미래가 직접 조향한 것이었다.
그에게 과일 몇 개나 꽃 한 다발을 주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향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인공적인 첨가물 없이 오직 은은한 꽃향기와 과일 향만이 담긴, 맑고 자연스러운 향수였다.
그리고 또, 막내 미래는 디자인에도 재능이 있어서 옷이나 보석 디자인 도안을 척척 그려냈다.
안유진은 나중에 누가 자기 집 막내 미래와 결혼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할 거라고 한두 번 생각한 게 아니었다.
안유진은 막내 미래를 보며 다정하게 웃었다.
“그래, 엄마랑 같이 가자. 평화, 꿈나, 너희 둘은 화장실 안 갈 거야?”
안평화와 안꿈나는 동시에 고개를 저으며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가!”
“그럼 너희 둘은 여기서 엄마랑 동생 기다려. 아무 데나 돌아다니지 말고. 미래 데리고 화장실 다녀올게.”
“응.”
안유진은 막내 미래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입구에 도착하자 안유진은 다시 몸을 웅크리고 당부했다.
“미래야, 넌 남자 화장실로 가고 엄마는 여자 화장실로 갈게. 이따가 네가 먼저 나오면 여기서 엄마 기다려.”
“응응.” 막내 미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짧은 다리를 휘저으며 남자 화장실로 달려 들어갔다.
안유진은 막내 미래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 짓고는 여자 화장실로 몸을 돌렸다.
곧 막내 미래가 나왔다. 그는 정말로 돌아다니지 않고 얌전히 화장실 밖에서 안유진을 기다렸다.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무리가 화려하게 차려입은 한 여자를 둘러싸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여자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립스틱 색도 아주 선명했다. 그녀는 몹시 화가 난 듯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소리쳤다.
“앞으로는 그런 단막극 같은 건 받지 마세요. 산골짜기까지 가서 촬영하고 돌아오는 게 얼마나 귀찮은데요. 비행기도 없고, 기차를 타야 하잖아요! 제 신분에 기차 타는 게 어울려요? 기차 타는 사람들 꼴 좀 봐요. 하나같이 꾀죄죄하고 교양 없는 것들이라 역겨워 죽겠네!”
한소은의 목소리는 작지 않아서 주위 사람들이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매니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달랬고, 경호원들은 양옆에서 거칠게 길을 텄다.
“비켜요! 비켜! 다들 멀리 떨어져요!”
막내 미래는 어리둥절한 채 피할 틈도 없이 세게 밀쳐졌다.
그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아팠지만 눈물이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채 소리도 내지 못했다.
“이거 누구 집 애야? 꺼져!” 한소은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막내 미래는 그 기세에 잔뜩 겁을 먹고 바닥에 주저앉아 입술을 오므린 채 눈물 어린 눈으로 한소은을 바라보며 꼼짝도 못 했다.
한소은은 눈살을 찌푸렸다. 막내 미래를 보자 마음속 가시가 떠올랐다.
그 가시는 눈앞의 이 빌어먹을 아이와 비슷한 나이였다.
그녀는 이를 갈았다.
“꺼지라는데 아직도 앉아 있어? 남의 길 막으면 안 되는 거 몰라?! 네 부모는 평소에 널 어떻게 가르친 거야? 교양 없고 버르장머리 없기는!”
한소은은 말을 마치고 구두코로 막내 미래를 세게 걷어차고는 하이힐을 신고 떠나버렸다.
막내 미래는 ‘와앙’ 하고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형아, 아파, 흐어엉….”
안유진이 아직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은 사이, 평화와 꿈나가 소란을 듣고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는 서둘러 물었다.
“왜 그래, 미래야? 무슨 일이야?”
막내 미래는 형들을 보자 더 서럽게 울었다.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저… 저 아줌마가… 나 찼어…. 형아, 아파… 흐어엉….”
안꿈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불같이 화가 났다. 감히 자기 동생을 건드려? 자기가 죽은 줄 아나?!
“형, 미래 좀 보고 있어. 내가 가서 따지고 올게!”
안꿈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달려 나갔고, 금세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